우주히피 - On Your Side

2011. 12. 12. 16:15Album/국내

Artist : 우주히피
Album : On Your Side
2011. 11. 24

이거참애매합니다잉

조금은 시니컬한 관점에서 "음반 보도자료 해석 사전"을 들춰보자.(물론 이런 건 실제로 존재하진 않는다.) 그 중 '특별히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류의 문장이 들어갈 때에는 대개 정돈되지 않은 앨범의 난잡함을 감추려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트렌드인 '진심'이나 '위로' 같은 문장이 등장하는 경우는 아티스트로서의 고민이 그다지 녹아나지 않은 헛헛한 문장으로 채워진 가사를 포장하려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거기에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아티스트가 참여했다는 사실을 (아무 맥락 없이) 직간접적으로 공표하며 관심을 끄는 경우는...대중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A&R 담당자와 소비자의 알면서도 서로 속고 속아주는 이 법칙은 보이지 않는 일종의 불문율이다. 그래서 이런 문장들을 가지고 '허위사실 유포' 같은 죄목으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다. 

우주히피의 [on your side]의 보도자료는 언급한 세 가지 요소를 고루 갖췄다. 거기에 '우주'와 '히피'라는 단어를 나란히 병치시키는 의외성을 갖춘 밴드의 이름까지 더해져, 처음 이들을 접할 때 암묵적으로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음악을 플레이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앨범을 플레이시켰을 때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의외성이나 코믹함, 트렌디한 단어의 조합으로 이뤄진 가사를 제외한 묵직한 밴드 음악의 질감이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유기농 파프리카'의 묘사는 허무함, 혹은 장난스러움 보다는 다소 지글거리면서 세련되지만은 않은 정통적인 밴드의 사운드를 빌려 음식 예찬론을 펼치는 상황을 재현시킨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 너를 위해서"라며 직접적인 애정을 노래하는 'on your side'의 인트로는, 한 방에 '훅' 와 닿지 않는 코드워크로 시작된다. 10cm의 권정열이 참여한 '우리'에서는 서로의 보컬이 조화를 이루거나 '묻어가는' 순간보다는 이들의 음악이 깔끔하게 재단된 여타 어쿠스틱 기반의 밴드들과 어떤 차별적인 지점이 강조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주히피는 '위트'나 결정적인 이미지의 캐릭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같은 요소를 갖추고 있지 않다. 정말 이들의 음악을 누군가에게 권할 때 쓰는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다."는 표현은 홍보문구가 아니라, 팩트에 가깝다. 언제부터인가 구체적으로 설정된 화자의 캐릭터와 특수한 상황에 대한 노래를 하지 않는 밴드는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래서 '좀 더 대중적인 가사'를 담았다고 하는 이번 앨범은 오히려 친근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작금의 대중성은 [30대 보호구역] 같은 곡을 통해 확보하기 쉽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포인트가 부재한 우주히피의 이번 앨범은 오히려 순수해 보인다.

알다시피 이제는 '난 자유를 원해.'라는 문장 앞에는 '조금 거창하지만'과 같은 자조적인 문구('iwanttoreal' 中)가 붙어야 하는 시대이기에 이들의 정공법은 순수함 보다는 순진함에 가깝게 평가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추억하는 애정 전선에 대해 "우린 한 편의 영화 같지."('rain' 中) 라고 표현하는 투박한 감성은, 누군가를 꼬시기 위해 수백 번씩 머리를 굴린 노래들과 묘한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편성부터 곡의 진행까지, 어느 한순간도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치거나 감정적으로 청자를 나락에 빠뜨리는 순간은 없다. 하지만 이건 앨범의 부정적인 면모가 아닌 일종의 미덕이다. 쉽게 정의된 음악은 그만큼 쉽게 잊혀지고, 효용 가치가 소모되고 만다. 우주히피의 음악은 그렇게 '애매하게' 접근해 사람들에게 파고들 만한 거칠면서도 섬세한, 괴상한 캐릭터를 갖췄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느끼한 작업의 고수가 아니라, 아무 짓도 안 하지만 어느 순간 계속 쳐다보게 되는 묵직한, 그런 캐릭터처럼 말이다. 원래 명확한 사실보다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불확실한 가치가 삶속에 파고들게 되는 만큼, 이런 모호한 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든 '마성'을 발휘하게 되는 순간을 우리에게 펼쳐보인다. 물론, 호불호는 그 다음 문제일 것이다.

(네이버뮤직 기고문 수정)


-Track List-
1. 유기농 파프리카
2. On Your Side
3. Show Me
4. Rain
5. 1.2.3
6. 우리
7. 하루는
8. Iwanttoreal
9. 들어봐
10. 말을해
11. 이제는
12. 돌아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