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2012. 7. 3. 11:43Album/국내

 

Artist :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

Album :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2012. 06. 08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던 것에 대하여

 

에피톤 프로젝트의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몇 개의 키워드는 (지겹겠지만) 감성이라든지 서정과 같은 실체 없는 수식어들이었고, 그간의 앨범 타이틀들은 이에 부응하는 듯한 이미지를 선보여왔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라는 '싸이월드' 시절의 감수성을 연상시키는 타이틀과 함께 인트로격인 '5122'가 흘러나올 때 - 그리고 '새벽녘'과 '우리의 음악'을 거쳐 '미뉴에트'로 마무리될 때까지 앨범은 이 이미지에 충실한 음악을 선보인다. 물론 '5122'에서 '이제, 여기에서'로 전환되는 순간은 퍼커션을 극대화시켜 이런 스타일의 앨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텐션과 불안정함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앨범은 이후 한 치의 감성적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안정'에 있다. 일련의 파스텔 뮤직을 설명하는 취향(정확히는 장르)이 결코 한국 음악씬의 주류에서 소비되던 형태의 음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을 파스텔-인디-홍대로 설명되는 씬으로 포괄하는 것은 상당히 게으른 판단이다.

그래서 대부분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을 이야기할 때 토이(프로듀서+보컬 체제)와 김동률/이적/윤종신(90년대의 '고급 가요' 취향)의 계보를 떠올리며 루시드 폴(인디씬에서 확장되는 활동 영역)에 비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점차 다양한 아티스트군과의 조우를 통해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동안 에피톤 프로젝트는 '비 매체 친화적' 뮤지션이 보여주는 팝 앨범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왔다.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유실물 보관소]와 견주었을 때 겹겹이 쌓아올린 스트링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장르의 변용에서 다소 자유롭다. 무엇보다 프로듀서로서의 지분만큼 비중을 높인 차세정의 보컬은, 예상외로 '11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서의 공허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에피톤 "프로젝트"로서의 입지에서 벗어나 한 명의 솔로 아티스트로서 성공적인 포지셔닝을 완성한다(성공 여부와 별개로).

 

이런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가 가지는 미덕은, 한국 음악씬에서 "발라드"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며 정리되지 않던 하나의 레퍼런스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간편하게 '감수성 있는 홍대인디'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음악이라기보다는, 한동안 매체(라디오와 [가요 톱 텐]의 20위권에 장기간 머물던)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한국형 발라드'의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와 맞닿은 지점은 루시드 폴, 혹은 하나음악에서 보여주던 치열하게 세공된 감성이라기보다는 성시경의 [The Ballads]나 윤종신의 초기 앨범에서 보여주는 통속성, 아련함에 가깝고. 이는 한동안 주류씬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한 결과물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소홀해진 보편적인 감성에 대한 이야기다.

멜로디와 보편적인 감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해 리듬과 편성, 기획력에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가 쏠리면서 점차 '특별한 감각'에 대해 집중하는 사이, 에피톤 프로젝트는 촘촘히 짜여진 보편적인 감성에 집중한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했던 날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터미널') 장면과 "우리가 대체 어디서 잘못되었던 것일까"를 반문('새벽녘')하며 "내가 졸린 눈을 비비는 사이, 당신은 무엇을 하는지"('시차')를 궁금해 하던 모습을 성실하게 그려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어설프지 않게 완벽한 팝 앨범을 만들고자 하는 성취욕을 보여주었고, 게으르지 않게 보편적인 노래와 앨범을 만들어냈다. 잠깐이지만 '차트 줄 세우기'가 가능했던 것은 이 앨범이 보편성 획득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 컨셉트 앨범으로서 동어반복의 순간을 드러내며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발라더(!)' 로서의 차세정의 보컬과 (한국형) 모던록과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가요"로 통칭되는 진행의 묘가 어우러진 새로운 질감의 팝 발라드 앨범으로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음악씬에서조차 진영논리에 함몰된 무의미한 담론이 오고가는 동안 한편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지향점들이 나타내왔고, 에피톤 프로젝트를 위시한 아티스트들은 반작용을 넘어서 완성도 높은 팝 음악에 대한 접근의 가치를 되새겼다. 에피톤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적인 환호가 반가운 이유가 차트에서 (잠시라도) 빅뱅을 밀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자극을 대중에게 환기시켰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네이버뮤직 기고문 수정)

 

-Track List-

1. 5122
2. 이제, 여기에서
3. 시차
4. 다음날 아침 (Duet with 한희정)
5. 새벽녘
6. 초보비행
7. 국경을 넘는 기차
8. 떠나자
9. 우리의 음악
10. 믿을게
11. 터미널
12. 미뉴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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