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27. 13:22ㆍAlbum/국내
Artist : 정원영
Album : 5
2010. 12. 02
과잉의 시대에 부르는 상실의 노래
정원영의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회상’이다. 앨범이 봄부터 겨울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어 있지만 이는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이라기보다는 한 해를 마감하는 겨울에 다시 다이어리를 들춰보는 느낌에 가깝다. 그렇기에 정원영의 어떤 앨범보다도 개인적인, 정확히는 ‘사적인’ 느낌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음악이 화려하거나 격정적이었던 적은 많지 않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5집은 유난히 소박하고, 정적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이 앨범을 들으면서 예술적 성취를 위한 직접적인 야망이나 욕심을 느끼기는 어렵다. 비슷한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여타의 앨범들이 순간적인 캐치(catchy)함을 위해 분투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음악은 조심스러운 연주처럼 음표 하나하나를 쌓아올려 지나온 시간들을 재현한다.
정원영의 연주가 보여주는 가장 큰 미덕은 그의 개인적 회상이 과거 어느 시간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싸구려 감상적 욕심이라든지, 혹은 감정적으로 과잉된 표현을 자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무릎을 치며 격렬히 공감하게 되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감정의 선을 따라가면서 청자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혼란과 과잉이 점철된 지금의 시대에, 많은 노래들이 사람들의 치열한(혹은 비열하거나 한심한) 현재를 복각시키며 새롭게 정형화된 위로를 자판기처럼 재생산하고 있지만 그의 연주와 나긋나긋한 보컬은 매 순간을 조용히 관조하며 노래한다. 가장 ‘과잉’인 지점은 앨범 타이틀뿐이다.("꿈과 한패인 선잠에 눌려있다 가까스로 빠져나온 그 빈 침대에는 누군가는 그리워할 내 냄새가 아직 남아 있을꺼야")
타이틀곡 ‘겨울’을 제외하면 앨범은 전체적으로 피아노가 중심이 되고 있는데, 피아노가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현악이 뒷받침하는 통속적인 구성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구성은 보컬 트랙에서도 지속되고 있는데, ‘천천히...천천히’에서 보여주는 ‘코드를 짚는’방식위주의 연주는 정원영과 엄정화의 나른한 보컬과 융화되어 최소한의 연주와 목소리만으로 감성적인 순간을 연출하는 방식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감정은 ‘5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극히 은유적인 가사(“메마른 눈가엔/깊은 주름 생겨/날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는 단순한 연주 위에서 정원영의 굴곡 없는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통렬한 비극을 전달한다.(‘5月‘은 해외 입양아에 관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다소 통속적인 영화의 오프닝 테마와 같이 들리지만 반복적인 테마를 위주로 진행되는 앨범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가이드격인 첫 곡 ’변명‘을 시작으로 어머니(’봄타령‘, ’그 여자네 집‘), 청춘(’그 여름의 끝‘), 연인(’천천히...천천히‘, ’겨울‘)을 하나씩 추억한다. 분절적인 별개의 추억들은 현재가 아닌 그 어떤 지난 시간을 총체적으로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동시상영‘)
많은 뮤지션들이 화려하고 빠른 편성에 대한 반작용으로(혹은 또 다른 시장에 대한 돌파구로) 거친 질감이나 소극적인 연주, 불확실한 대상을 노래하는 가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까운 것은 이들 중 많은 결과물들이 서점에 즐비한 “느리게 살아라”류의 진정성 없는, 코스프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원영은 몇 가지의 손쉬운 표현 방법에 의존하기 보다는 ‘봄타령’에서의 규칙적인 박수소리를 통해 다차원적일 수밖에 없는 상실의 순간에 대한 슬픔을 표현했고, 극도로 정적인 순간의 말미에 약간의 리듬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감정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정원영의 방법론은 트렌디하기 보다는 오히려 교과서에 등장하는 현대 시에 가까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결코 진부하거나 고루해 보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앳된 그의 목소리와 더불어 그의 연주가 연령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긱스부터 영화음악, 정원영밴드까지 수 많은 작업들을 소화한 공력과 나이에서 묻어나오는 연륜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우연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오랜 세월 사랑받는 음악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감상하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Track List-
1. 변명 (Inst.)
2. 봄타령
3. 5月
4. 그 여름의 끝 (Inst.)
5. 천천히...천천히
6. 가을이 오면 (Inst.)
7. 그 여자네 집 (Inst.)
8. 겨울
9. 벌써 한 달 (Inst.)
10. 동시상영 (Inst.)
(네이버뮤직 기고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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