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온 - Garion 2

2010. 12. 16. 15:55Album/국내


Artist : 가리온
Album : Garion 2
2010. 10. 26

어떤 표준

디지(Deegie)는 자신의 부틀렉 앨범에서 트랙을 할애해가며 가리온 '데뷔'앨범을 손에 넣은 소회를 밝혔다. 미디어는 이들을 "한국 힙합의 최전선"으로 수식한다. 단절이 취미이자 특기인 음악씬에서는 10대들 조차 이들의 음반을 손꼽아 기다리며 '끝판 왕'의 재림을 기대했다. 그들의 음원을 찾아볼 수 있는 가시적 앨범으로는 [Blex vol.2] 정도를 꼽을 수 있겠는데 함께 곡을 수록한 아티스트들을 훑어본다면 이들은 사실상 [Garion 2]를 발매함으로써 자신들이 다른 차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역설했다. 애초부터 단순한 'Respect'만으로 이들에 대한 반응을 설명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잘 만든 앨범'이라는 평가만으로 온전히 이들의 결과물을 논하는 것도.(물론 이것이 감정에 따르는 동정표 따위와는 거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전작 [Garion]이 샘플과 루프를 다루는 둔탁한 방식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보여주었다면, 지난 두 장의 싱글 [무투]와 [그 날 이후]로 그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영역에서 벗어났을 때의 진화를 선보였다. 공백은 컸지만 가리온 이후 세대의 프로듀서가 참여하는 모습은 나찰과 메타 개인의 변화와 더불어 역사적인 흐름을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Garion 2]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 누군가는 가리온이 냉동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겠지만 - 특히 킵루츠(Keeproots)의 비트를 안은 <산다는 게>, <영순위>의 역설적인 반응들은 가리온의 우직한 (나름의)변화를 읽는 중요 지점이다. <산다는 게>는 가리온의 커리어를 놓고 봤을때도 가장 이질적인 질감의 노래이고, 무엇보다 작법은 차트 친화적인 방식이다. 가리온 본인들도 이런 접근 방식을 통해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주고자 했음을 설명했는데, <산다는 게>가 '타이틀 곡'이라는 용어와 밀착된다면 <영순위>는 앨범의 흡입력을 선사한다. 물론 기존의 익숙한 작법이 앨범의 흐름 속에서 돌출되지 않았음이 이번 앨범의 최대 덕목이다. Dok2의 <복마전>, 진취의 <술 푼 사슴>에 대한 인식 역시 앞서 언급한 의외성과 맞닿아 있지만 이 곡들 역시 가리온에 대한 인식적 사슬을 끊어내는 순간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런 분절적인 고찰이 우선시 될 만큼, [Garion 2]는 다양한 비트 메이커들의 참여 속에서 여전히 한 가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리온이 여전히 한국 힙합씬에서 존재 가치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과의 승패여부를 떠나서 이들은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고민하며 '한국적(게으른 샘플링?)' 힙합에 대한 접근 방식과 더불어 장르적 기반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는 장르를 불문한 창작의 철학이 가장 기본적이고, 고루할 정도로 우직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Garion 2]는 분명히 투덜거릴만한 부분이 있는 앨범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불만은 최근의 음악씬에 갖는 불만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아티스트들이 가리온의 새 앨범을 듣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리고 이들이 여전히 한국 힙합의 최전선을 달리는 이유는 랩과 비트, 그리고 태도의 기본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 랩 게임이라는 것이 나이와 경력이 무관한 씬이다. 그럼에도 MC들이 가리온을 바라보는 이유는, 그리고 리스너가 이들을 기다리는 이유는 단편적인 감상으로는 평가 불가능한 요소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 이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며 요소들을 재생산 해왔다.

본디 레퍼런스란 그런 존재 가치를 갖는 법이다.


-Track List-
1. 다만, 가리온
2. 약속의 장소
3. 산다는 게 (feat. 선미)
4. 복마전
5. 객석 (feat. 샛별)
6. 수라의 노래
7. 본전치기
8. 영순위 (feat. 넋업샨)
9. 판게아 (feat. P-TYPE)
10. 술 푼 사슴
11. 그 날 이후 (feat. 채영)
12. 나는 소망한다
13. 불가사리
14. 생명수
15. 소리를 더 크게 (feat. SEAN2SLOW)
16. 12월 16일 (feat. LUCY)
17.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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